'와글와글 세상 메모'에 해당되는 글 16

  1. 2006.07.25 자전거를 타면 한국이 보인다
  2. 2006.06.21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를 위하여
  3. 2006.05.22 "박근혜 사건은 정치 실패의 결과"
  4. 2006.02.21 노현정한텐 지고 싶네, 희한하네
  5. 2006.01.06 유시민
  6. 2005.06.01 싸이 일촌이 뭔지 아니?

자전거를 타면 한국이 보인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40분쯤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하천을 따라 깔아놓은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간다. 왕복 자전거도로 옆에는 연두색으로 칠해진 인도가 나 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자전거 도로 한복판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본다. 그것도 두세명씩 옆으로 나란히 서서 도로를 3분의 2를 점령하고 걸어간다. 한참 전부터 종을 한두번 울리면 굼뜬 아줌마, 아저씨들이 슬그머니 인도로 비켜 줄 때도 있지만 ‘니가 비켜 가시오.’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뒤에서 종을 울릴 땐 그렇다치고 한참 앞에서도 자전거가 달려오고 있는 걸 보면서도 세명씩 나란히 걸어오는 사람들이 비켜줄 생각을 안 해서 종을 울려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비켜주는 기미가 없으면 그 사람들을 지나칠 때까지 연이어 종을 울리며 지나간다. 때론, ‘종이 울리면 좀 피해 줍시다.’ 이러고 지나갈 때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 아줌마, 아저씨들 반응은 정말 가관이다. 최근 몇가지 반응들을 보면,

“(뒤에서)어떤 년인데 저래?”(3명이 나란히 걸었던 아줌마 부대)
“얌마, 니가 비켜가면 되잖아.”(부부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가 연신 울려대는 종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 도로 한복판에서 걷고 있다가 그 중 아저씨가 던진 말)

그리고 어제 저녁, 인도가 끝나고 자전거 도로만 표시되어 있음에도 싹 무시하고 도보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 달리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종을 울려댔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 사람들 옆을 지나가며 “종이 울리면 좀 피해주던가, 자전거 도로니까 한줄로 다닙시다.” 이랬더니 아저씨왈 “야, 여기가 사람 다니는 데야? 자전거 다니는 데야?” 이러질 않겠는가. 바닥에 그려진 자전거 마크는 뭐냐고 했더니 이 아저씨 왈 “이런 쌍놈의 계집애!” 또 이러는 게 아닌가! 이쯤 되면 나도 예의 어쩌고가 필요가 없는 거다. 문제는 그 아저씨 여차하면 한 대 내려칠 것도 같았다는 사실. 내가 맞을 일 있나? 좋다, 나도 독한 맘 먹고 “쌍놈의 아저씨!”라고 날려주고 발판을 밟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런 쌍스런 욕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자전거를 탄 이래 그리고 어제 따라 한 20여분 달리는 동안 그런 일을 수도없이 당하다 보니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그렇게 힘들게 누리는 데 서러움이 들어서였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시간에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게 잘못인가, 이러다 내 명에 못살고 죽는 거 아닌가, 이제 자전거를 그만 타야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요즘 난 자전거 타고 전국 일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어제도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그만 타야하나 그런 회의까지 들 정도면 너무 변덕이 심한 건가?

웃긴 건 종종 저만치 앞에서 눈에 띄는 외국인들은 자전거가 지나가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몸을 잽싸게 움직여 자전거 도로 밖으로 피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대조현상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그런 대조적인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가 숙제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내머리에서 바보 도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강과 녹색으로 자전거 도로와 인도를 구분해 놓은 곳에서 어떤 부부가 자전거로 자전거 도로인 붉은색 길을 옆으로 가로막고 서 있어서 종을 울렸는데도 뻔히 쳐다보기만 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 거다. 옆에 서 있는 아들로 보이는 녀석이라도 옆으로 비켜서면 피해가겠는데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 애한테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보였다. 종을 계속 울리며 다가가 그 아이가 비켜서는 걸 기다리며 종이 울리는데 피해줄 생각 좀 해야되는 거 아니냐고 한마디 하고 발판을 밟는데 머리에서 번개가 지나갔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남이 나를 위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수동적 자세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거였다. 주체적 / 능동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응적 / 수동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부싸움을 해도 남편/아내인 당신이 문제요, 사회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있을테니까 니가 좀 바뀌시오다.

아내는 남편한테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한테 의존하고, 남편과 아내가 소통되는 삶이 아니다 보니 아내는 그 애정결핍을 자식한테서 보상받으려는듯 자식한테 과도한 관심을 쏟아붓고, 자식은 엄마의 명령에 길들여진 삶이다 보니 다들 얽히고 설켜 자기 몸이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거다. 직장이고, 집이고 명령, 통제, 지배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스스로 움직일 줄을 모르는 거다. 그러니 자전거 도로에서도 주체적 의식이 안 따라 주니 몸을 움직일 필요를 못 느끼는 거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한국이 바뀌기 꽤 힘들겠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전거 도로에만 있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이 사회 곳곳을 그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이 사회가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공교롭게도 어제 도서관에서 홍은택 씨가 쓴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라는 책을 봤는데 거기에서 러시아가 망한 이유가 윗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국토 횡단을 해보지 않아서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회 운동을 한다는 분들도 자전거를 타보면 생각이 확 바뀌지 않을까? 그 책에서는 역사 현장에 의미를 둔 것 같지만, 난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한고집 / wassgoinon
출처 : 한토마 게시판 http://bbs2.hani.co.kr/board/ns_society/Contents.asp?Stable=NSP_005000000&Idx=29197&Rno=24401&rp=


타성에 젖는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를 위하여

어린시절 필자에게는 한 가지 헷갈리는 일이 있었다. 늘 선생님들은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의 청소년이 존경해야 할 사람인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읽었을 때 그의 삶은 ‘착한 아이’의 모습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들도 ‘잘나가는’ 법률가가 되기를 기대했던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린 채 젊은날을 ‘쓸모없는’ 철학 공부로 보냈다가 빚더미에 앉은 망명객이 돼버린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자본론〉을 쓰고도 자신의 자본은 못 만들었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마르크스의 그러한 ‘탕아 행각’도 만만치 않았지만 부모의 허락도 없이 급진파 유대인과 약혼함으로써 집안에 ‘불명예’를 안겨준 그 부인 예니의 행동 또한 불효막심이 아니었던가? 예니의 이복오빠가 독일 내무장관이 되었어도 예니는 망명지 런던에서 태어난 아이의 요람을 살 돈이 없었고, 아이가 일찍 죽어도 관을 살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탕아들끼리 평생 그렇게도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150년 전의 유럽 유산층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길로 가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일처럼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옛날 사람들은 월인천강, 하나의 달 그림자가 천 개의 강에 비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경쟁주의·출세주의는 부모의 마음에 내면화해 가정마다 ‘학업 장려’와 같은 미명 아래 자행되는 폭력의 원동력이 된다. 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의 꿈을 꾸어볼 여유도 없이 부모의 꿈은 곧 아이의 꿈이 되고 만다. 입시 전쟁에서 패배하면 ‘불쌍한 무능아’ 아니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 못하는 배신자’가 되는 줄 알고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전쟁 준비’에 몇 해를 허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꼭 그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서양음악을 아이에게 시켜야 상류층이 된다는 ‘통념’을 익힌 부모들이 “신분 상승을 도모하라”는 사회의 절대명령대로 음악과 별 인연도 없는 자녀에게 악기 공부를 무리하게 시키는가 하면, “조기 유학을 안 보내면 안 된다”는 새로운 ‘상식’대로 부모 곁을 떠날 마음도 없는 불안한 아이들을 억지로 이역으로 떼어 보낸다.

사회가 강권하는 이런 폭력의 결과는 무엇일까? 평생토록 부모에 대한 원망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아이의 심신을 파괴시킬 수도 있으며, 또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찾아내 사고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고 남을 따르기만 하는 세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작은 개발독재와 같은 '가국'(家國)에서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인격을 지키고 싶다면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능하겠는가? 뜻이 굳건한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겠지만 그에게는, 효도를 아직도 엄숙한 최고 덕목으로 주입시키는 사회에서 150년 전에 카를과 예니가 겪은 고뇌보다 한층 더 심각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역설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내세우는 부모라 해도 자신의 자녀가 마르크스처럼 행동할 경우 마르크스의 아버지보다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수능날에 시험장에서 벽이나 문에 기대어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때 필자는 감동되기는커녕 답답해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내 아이가 암기 경쟁에서 남을 잘 눌러 올라서서 승리하기를”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 기도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하셨듯이 (부모의 의도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도록 기도하는 것이 진정 종교가 아닌가.

- 박노자의 한겨레 칼럼, <말 잘 안 듣는 아이들을 위해서> 中



어릴 때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였던 나는 부모님과 자주 부딪쳤다. 하지 말라는 일도 납득이 안 가면 '일단 한번만 해보고..'였고 막상 하려다가도 훈수를 들으면 하기가 싫어지곤 했다. 네 살 부터 여덟 살까지 어머니는 나의 제멋대로 근성을 잡으려 무던히도 애쓰셨다. 참 맞기도 많이 맞았지.
고등학생이 되어서 부터는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자주 충돌했다. 그러나 뻔히 옳은 일을 우겨서 그르친 적은 별로 없다. 대체로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을 때는 부모님 말씀에 따랐으니까..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할 말은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이해와 화해도 좀더 쉽게 할 수 있었다.

부모의 가치관이 얼마나 훌륭하고 완결되어 있는 것이든 간에, 그것은 그들 세대에 속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는 인생의 보편적인 가치와 미덕을 가르치되 자신의 정신까지 물려주려 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유산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획득하지 못한 정신은 커다란 참나무에 드리워진 그늘일 뿐이라는 것을...

내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종종 나를 설득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박근혜 사건은 정치 실패의 결과"

박근혜 대표에 대한 문방구 칼을 이용한 사건이 엄청나게 큰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치 쟁점화를 넘어서 노무현 정부 탄생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움직임 때문이라는 말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손자나 보고 조용히 은신해도 될까말까한 차떼기를 통한 주연 배우였던 회창이 할아버지도 한말씀하셨다. 난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수백억원의 차떼기를 했던 한나라당의 대표까지 지냈던 사람이 무슨 염치로 정의 운운하는지 말이다. 아마 후손들이 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지 원.

본말을 벗어났으니 다시금 돌아와보자.
난 오히려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 정치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어떤 정신 나간 한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의 과격한 행동이 야당 대표에게 물리적 행동으로 보여진 사건치고는 뭐 너무 폭넓게 해석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정말 정치인들을 한대 투두려 패버리고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정치 수준은 땅에 떨어졌다.

참여정부는 자신들의 실패를 전 정권에 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실패한 정책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장에 맞서려고 연일 떼만 쓰고 있다. 지난 3년간의 실패를 보고 전혀 반성도 자괴도 없는 듯한 저 정부와 공무원들의 그 오만함의 정체가 무엇인가? 국민 알기를 뭐 같이 알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말해서 무엇하랴. 능력도 제대로 된 태도도 없는 비열한 기회주의자들일 뿐이다. 민주화 운동에 똥칠한 세력이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친미, 친재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줬다. 그들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천만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라고 찍었고, 감내하겠다고 해서 표를 준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은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고 말았다. 이들에게 민생은 있지도 않았다. 삶의 문제인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능력도 없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떻게 도입하고 어떻게 적용시켜 나가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지지했던 이들은 물론이고 자신들을 반대했던 그 많은 국민들의 삶을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지 알지 못했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노무현과 그 열린우리당은 말로는 경제를 이야기 했지만 정작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다만 삼성으로 대변되는 재벌들과의 협력 모델만을 통해서 .. 이제는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검찰을 이용한 재벌 길들이기로 고개를 숙일것을 강요하고 있다. 자신들을 믿고 따라오면 큰 득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는 못하면서 머리만 꿇으라고 지랄이다.

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자신들의 세비를 갹출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는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 정부에서 낸 비정규직 관련 법안만을 가지고 국회에서 지난한 토론만 했을 뿐이다. 국민이 뽑아준 대표들이 왜 공무원들이 올린 안만 가지고 떠드나.

한나라당으로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무릅을 꿇고 사죄함이 마땅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철부지의 미치광이일지라도 하나의 국민이라면 보듬어 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 이런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은 사회를 위해 한나라당이 나서겠다고 했다면 눈앞의 지자체 선거는 따논 당상이지만 대선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대선을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경제에서 죽을 쒀줘야 한다고 서슴치 않고 이야기하는 의원들이 바로 한나라당 아닌가.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접근이 지금 저런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치권은 한 미치광이 아저씨의 행동에 대해서 규탄을 하기 전에 국민앞에 머리를 꿇고 사죄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가 제대로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겨났다고 말이다. 그런 사건의 내막을 보지 못하고 누가 사주한 것인지, 노무현 너 죽었어, 열린우리당 당원이었다면서.. 하하 게임 끝났군이라고 써대는 언론이나 각 정치세력이나..

이래서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던 열린우리당이 권력을 잡던 국민들은 그 '희망'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최대의 비극이다. 이런 시민들의 바람하나 읽어내지 못하는 현재의 정치인들과 국가의 통솔자들.. 그리고 그 밑의 공무원들.. 그 어느 시대보다 당신들을 시민들의 역적임에 분명하다.

출처 : http://blog.naver.com/eweek/70004436634


도안구 선배와 메신저로 한 시간 이상 근래 정치와 선거판 등등을 얘기했다.
주로 선배가 열을 올리고 나는 몇 마디 안 했지만
"이 열우당 지지자 같으니라고!!!"는 소리를 들었다. 허허

도 선배가 박근혜 사건과 관련해 글을 써놓았다 하길래 블로그에 들어가 읽고
혼자 보기 아까워 가져왔다.

노현정한텐 지고 싶네, 희한하네


△ 노현정 현상은 감수성의 보수화를 상징하는 걸까. <스타골든벨>의 한 장면.

한국방송 <상상플러스>의 ‘올드 앤 뉴’에는 여자 연예인이 좀처럼 출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단 한 번, 설날 특집으로 여자 연예인들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올드 앤 뉴’에서도 여자 연예인은 좀처럼 출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올드 앤 뉴’가 유지하는 기본 구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올드 앤 뉴’는 여성 아나운서 노현정이 게임을 통제한다. 10대와 기성세대가 서로 모르는 단어를 맞히는 퀴즈쇼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노현정은 출연자들에게 주는 힌트의 수위를 조절하고, 출연자의 답을 판정하며, 때론 출연자들의 지나친 언행을 제지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대감’이라 불리는 남자 출연자들에 의해 진행되지만, 그들의 행동의 흐름을 조절하는 건 노현정이다. 그럴수록 ‘대감’들은 더욱 웃기는 언행으로 차가운 표정의 노현정을 ‘무너뜨리려’ 노력하고, 노현정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가 보내온 패러디 동영상의 내용처럼, 이 프로그램은 ‘여왕’과 그를 웃기려는 대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 관계가 프로그램의 기본 축을 이룬다.


여왕과 그를 웃기려는 대감들


이런 ‘올드 앤 뉴’의 성공은 남-여, 연예인-아나운서 간의 긴장관계를 이용한 퀴즈쇼 형식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연속적으로 생기는 계기가 됐다. ‘올드 앤 뉴’의 노현정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한국방송 <스타골든벨> 역시 연예인들이 계속 냉정한 진행자인 노현정에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구도로 이뤄진다. 노현정은 그들과의 ‘암산 대결’에 대부분 승리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남자 연예인들은 그런 노현정에게 애정공세를 펼치며, 여자 연예인들은 노현정을 질투하며 끊임없이 노현정을 중심으로 대립관계를 만든다. 또한 문화방송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한도전’은 MC 유재석을 비롯한 남자 출연자들이 정신없는 개그를 펼치다가, 가끔씩 얼굴도 보이지 않는 여성 아나운서에 의해 상황이 정리된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들은 ‘여성 아나운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위치’를 프로그램의 성격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여성 아나운서들은 신인이거나, 아예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개인의 힘만으로는 끼로 똘똘 뭉친 여러 명의 연예인들을 제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여성 아나운서가 가진 이미지를 프로그램의 역할과 연결시켜 그들에게 연예인들과 다른 권위를 부여한다. ‘올드 앤 뉴’에서 노현정은 위치상으로 다른 출연자들의 ‘위’에 있고, <스타골든벨>에서도 다른 연예인들과 분리된 장소에서 스크린을 통해 등장한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들은 그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진행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퀴즈쇼를 기본 형식으로 한 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도전이 된다.

과거에는 이 ‘놀이판’에 끼어든 사람은 누구든 광대가 돼야 했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여성 아나운서를 통해 그런 광대 놀음을 지켜보는 또 다른 권위를 설정해놓고, 놀이의 제한선을 스스로 설정한 것이다. 그들이 벌이는 해프닝은 말 그대로 ‘여왕을 웃기는’ 수준에서 이뤄져야지, 여왕마저도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내리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들에서 여성 아나운서의 이미지는 권위와 연결된다. 여성, 그것도 함께 놀이판에 끼어들어야 할 여성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또 아나운서라는 전문성은 그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프로그램 내에서 권위를 가지도록 만든다. 이는 지금까지 오락 프로그램이 여성 아나운서를 소비하는 방식과 상반된다. 보통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여성 아나운서들을 최대한 연예인과 똑같이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들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아나운서의 전문성 대신 ‘연예인만큼’ 끼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고, 다른 연예인들과 같은 위치에서 뒤섞여 연예인들처럼 웃겨야 오락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즉, 단정함·엄격함·전문성 같은 이미지로 대표되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같이 ‘망가지는’ 것이 재미의 포인트였다. 하지만 ‘올드 앤 뉴’ 같은 프로그램들은 여성 아나운서의 전문성이 만들어내는 권위를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이다.


웃기되 끌어내지는 말지어다


한때 권위란 ‘권위주의’와 동의어나 다름없었고, 곧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젊은 연예인들은 모범적인 이미지보다는 반항적이고 톡톡 튀는 개성을 가졌을 때 더 높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찢어진 청바지보다는 잘 디자인된 슈트 차림의 연예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청소년들은 아예 교복을 거부하기보다는 ‘S라인’을 잘 살려주는 교복을 찾는다. 그리고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지만 연예인처럼 자유분방하지만은 않은, 단정하고 똑똑한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가진 아나운서는 최고의 신붓감으로 떠올랐다. 적절한 권위와 통제, 그리고 모범적인 것에 대한 호감. 모든 출연자를 망가뜨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대신 아나운서의 단정함을 재미의 포인트로 삼은 ‘올드 앤 뉴’와 그런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그대로 지킨 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노현정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반항이 곧 멋이었던 X세대의 시대에서 어느 정도는 단정하고 격식을 지키는 것이 더 멋있는 또 다른 세대의 시대로, 권위의 무조건적인 부정이 아닌, 인정하고 ‘싶은’ 권위를 꿈꾸는 사회로 말이다.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
굳게 믿었던 그 무엇이 '이제는' 아니라 하여도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영원한 사랑'이 낭만주의가 풍미했던 19세기의 파생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부터는.
어떠한 진실도 시대에 맞지 않으면 거짓이 되거나 폐기처분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영웅도 성역도 사라져버린 2006년 대한민국에는 다시 '권위'가 유행하는 구나. 다만, 세월의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시대상을 따라잡으면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유시민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다. 사상의 자유가 필요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새로운 사상치고 처음에 '불온'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세상을 보는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상이한 여러 사상 사이에서 대립과 경쟁을 거쳐야 알 수 있다. 어떤 사상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를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칭 '진짜 자유주의자'라는 유시민을 나는 좋아한다.
소위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10대 20대를 보냈고 내가 원하는 말을 너무도 자주 해주었기 때문에 유시민에 대한 애정은 자기애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를 피력하고 있는 그의 견해가 현실 정치에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가나 사회의 선택 보다 개인의 선택을 우선 존중한다는 그의 자유주의는 '시장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시장 경제를 기본 질서로 복수정당제를 기초로 한 대의민주주의를 정치적 원리로 인정하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의 말이다.

사상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모든 사상이 동등하지는 않다. 스포츠 경기를 보며 막연하게 약자를 응원하는 휴머니즘이, 사상 경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가 깔고 앉은 땅 값이 올라가기 바라는 '입장(立場)'과 '소산(所算)'이 있고 사상은 여기에 기반하여야 한다.
정치판에서 입지는 생명력과 직결된다. 의원들은 입지를 위해 명분을 쌓고 수사학을 동원한다. 국회 한 복판에서 유시민 의원이 왕따가 되는 것도 그의 '튀는' 사상 이른바 '자유주의'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축하할 만한' 뉴스를 듣고, 나는 여론조사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자유주의자, 나아가 시장주의 옹호자인 그가 양극화 해소의 핵심인 복지부에서 어떤 소신을 펼칠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대통령이 그마이 무리해서 저질러버린 거, 기대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든다. 자유주의자, 꿈을 꾸는 정치가, 빛나는 상식을 가진 그에게 내심 바라는 바도 있다. 여야 통들어 파란이 일고 있는 그의 입각 논란을 이후 일거에 지워버릴 만큼 선정을 베풀어 주기를. 자유주의자의 다소 '순진한' 이상이 현실정치에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그렇게 된다면 인생, 그래도 살만 하구나 생각하고 나도 열심히 살겠다.

“나는 한번 하기로 마음먹으면 진지하고 성실하게 제대로 하는 인간이다. 나는 ‘무늬만 자유주의자’가 아니고 자유주의 신념을 지키는 ‘진짜 자유주의자’가 되겠다. 처음 해보는 것이니까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일단 한번 해보고 마음에 들면 죽을 때까지 ‘자유주의자’로 남을 것이다.”

싸이 일촌이 뭔지 아니?

“도토리 좀 줘” “우리 일촌 맺자”
요즘 한국에서는 종종 이런 말이 오간다. 이럴 때, “다람쥐도 아닌데 도토리는 무슨?”이라거나 “일촌은 부모 자식 간인데, 내가 네 엄마를 하라는 거니?”라고 대답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언뜻 보기에는 하자가 없는 대화지만, ‘도토리’와 ‘일촌’이 진짜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면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도토리’와 ‘일촌’은 한국에서 인터넷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절대 몰라서는 안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 싸이월드(www.cyworld.nate.com)에서 쓰이는 소위 ‘인터넷 전문 용어’다. 바보 취급 당하면 차라리 다행. “싸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니 신고당할 수도 있다.

싸이월드는 인터넷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다. 2003년부터 대표 서비스인 ‘미니홈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 내 최다 회원수를 자랑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www.daum.net)이나 최대포탈사이트인 NHN(www.naver.com)을 위협할 만큼 대형 사이트로 급성장했으며 최근에는 1천만 가입자 수를 돌파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경쟁력은 실명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이월드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이 공개되는 미니홈피가 하나씩 주어지며, 이를 기본으로 크고 작은 모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실명을 드러내는 미니홈피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는 매우 다른 환경을 조성한다. 싸이월드의 공간은 확실히 키보드 반대편 끝에 있는 상대에게 몸을 숨긴 채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험악한 인터넷 공간 보다는 다정하고 따스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현재 매일 같이 만나고 있거나 얼마전 만난 적이 있거나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도토리’ ‘일촌’ 모르면 왕따

요즘 한국에서는 오랜 만에 만난 친구나 새로 사귀게 된 친구․동료들끼리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를 주고 받곤 한다.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는 것은 ‘앞으로 연락하고 지내자’ 정도의 의미지만, 미니홈피 주소를 주고 받는 것은 '좀더 친하게 지내자'라는 의미로 읽힌다. 자신에 대한 정보와 근황이 담긴 좀더 사적인 공간을 오픈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좀더 알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오프라인보다 편하게, 좀더 자주 만날 수 있다.
미니홈피는 일차적으로 ‘일촌’ 관계로 엮여있다. 서로 동의 하에 일촌 관계를 맺고 나면, 좀더 사적인 내용은 선택적으로 일촌에게만 공개할 수 있다. ‘일촌’의 실제 의미가 부모․자식 간의 촌수를 뜻하듯이, 싸이월드에서 “일촌맺자”는 말은 그만큼 긴밀한 관계를 맺자는 다정한 뜻이다.
‘도토리’는 싸이월드 내에 쓰이는 일종의 ‘돈’이다. 싸이월드의 가입자들은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여러 가지 아기자기한 아이템과 배경 음악, 일촌에게 줄 선물 등을 도토리로 살 수 있다.
사람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일정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것처럼 싸이월드의 도토리 역시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주인의 개성을 드러내고 방문자들이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미니홈피를 꾸미고 관리하기 위한 아이템을 도토리로 살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벤트를 걸어 특정 숫자에 방문하는 사람이나 생일을 맞은 일촌에게 아이템을 선물함으로써 친절을 베풀 수도 있다.
선물을 자주 하는 사용자의 경우 자신의 미니홈 오른쪽 상단에 있는 ‘카인드(kind)' 수치가 높아진다. 방문객이 많은 미니홈피에는 '페이머스(famous)' 수치가 늘어난다.
오프라인에서 친절하고 인기있는 사람에 대한 선호도가 높듯이, 싸이월드에서의 인간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볼 것이 많은 사람의 미니홈피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득시글하다. 아무래도 오프라인에서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보다는 사이버 상이 적게 드는 편인 까닭에 인맥 관리에 싸이월드를 이용한다는 경우도 많다. 세일즈맨이나 보험 관리사들은 고객 관리에 싸이월드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사이좋은 사람들의 ‘싸이월드’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는 싸이월드에서는 또 한가지 재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바로 ‘사람 찾기’다. 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난 해만 알면, 그 사람이 싸이월드 가입자일 경우 찾고 싶은 사람의 미니홈피로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찾고 싶은 사람이 싸이월드에 가입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10대에서 30대 초반 연령대의 사람이라면 천 만명 가입자 가운데 없을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 또한 흔한 이름인 경우에는 후보자가 많아 여러번 클릭을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찾고 싶다는 의지만 강하다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연예인 역시 ‘사람찾기’를 통해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기획사 차원에서 관리하는 공식 홈페이지 보다 스타의 손길이 좀더 섬세하게 묻어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찾는 팬들이 많다. 특히, 전문가들의 솜씨에 의한 정제된 사진으로 채워져 있는 공식 홈페이지와는 달리, 연예인의 미니홈피에는 핸드폰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로 손수 찍은 생생한 사진들이 많아 좋아하는 스타의 삶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또한 미니홈피 초기 화면의 일촌평이나 게시물 등을 통해 연예인들의 인맥 관계를 짐작할 수 있으며 링크를 타고 다른 연예인의 홈을 방문할 수도 있다. 일부 마음 좋은 연예인들은 ‘일촌맺기’를 신청하는 팬들에게 일촌을 허락하기도 한다.
한류스타 류시원의 경우,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머물러 있는 동안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꾸준히 근황을 알림으로써 국내 팬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활발한 일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요즘 일본 팬들의 미니 홈피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5.05.31 00:12, 한 일본 팬이 류시원의 미니 홈을 방문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Dear Ryu Siwon sii
♪ 오늘의 도쿄는 추웠지요····피로합니까?건강합니까?
기온의 차이가 크니까···· 감기 걸리지 말아 주세요!
5월이나 내일에 끝나는군요···
세월이 지나는 것이 빠릅니다···
매일 행복하게 보내 주세요
★ 오빠~~★ 사랑하고 있어요 ★*^0^*★      
From TOMOE☆(트모에)(^o^)丿”

사이버 세상에도 분명 온기가 존재한다. 일촌들 간의 촘촘한 네트워크로 이뤄져있는 싸이월드의 공간은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할 것이다. 실명제 기반의 인맥 중심으로 운영되는 싸이월드가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나 블로그에 비해 다소 폐쇄적인 인터넷 문화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싸이월드의 일촌 문화가 국경을 넘어 일본을 비롯한 세계에 좀더 알려져 ‘국제 일촌’도 좀 생겨줬으면 한다. 왜 안 되겠는가. 서로 동의만 하면 얼마든지 일촌이 될 수 있는 곳이 싸이월드인데 말이다.

<tip>
연예인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
김희선 : http://www.cyworld.com/kimheeseon
류시원 http://www.cyworld.com/jolla106
http://www.cyworld.com/rain3rd
채연 : http://www.cyworld.com/fuhachaeyeon
보아 : http://cyworld.nate.com/BoA42
세븐 : http://cyworld.nate.com/yg7
슈(SES) : http://www.cyworld.com/sh1023



-----

곧 창간하는 <한일문화포커스>에 객원으로 쓴 기사.
시의성이 무지 떨어지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행되는 문화 전문 잡지이고 일본 부수 쪽이 좀더 높다.
매우 날림이다. 하지만 모처럼 부담없이 즐겁게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