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일촌이 뭔지 아니?

“도토리 좀 줘” “우리 일촌 맺자”
요즘 한국에서는 종종 이런 말이 오간다. 이럴 때, “다람쥐도 아닌데 도토리는 무슨?”이라거나 “일촌은 부모 자식 간인데, 내가 네 엄마를 하라는 거니?”라고 대답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언뜻 보기에는 하자가 없는 대화지만, ‘도토리’와 ‘일촌’이 진짜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면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도토리’와 ‘일촌’은 한국에서 인터넷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절대 몰라서는 안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 싸이월드(www.cyworld.nate.com)에서 쓰이는 소위 ‘인터넷 전문 용어’다. 바보 취급 당하면 차라리 다행. “싸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니 신고당할 수도 있다.

싸이월드는 인터넷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다. 2003년부터 대표 서비스인 ‘미니홈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 내 최다 회원수를 자랑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www.daum.net)이나 최대포탈사이트인 NHN(www.naver.com)을 위협할 만큼 대형 사이트로 급성장했으며 최근에는 1천만 가입자 수를 돌파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경쟁력은 실명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이월드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이 공개되는 미니홈피가 하나씩 주어지며, 이를 기본으로 크고 작은 모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실명을 드러내는 미니홈피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는 매우 다른 환경을 조성한다. 싸이월드의 공간은 확실히 키보드 반대편 끝에 있는 상대에게 몸을 숨긴 채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험악한 인터넷 공간 보다는 다정하고 따스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현재 매일 같이 만나고 있거나 얼마전 만난 적이 있거나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도토리’ ‘일촌’ 모르면 왕따

요즘 한국에서는 오랜 만에 만난 친구나 새로 사귀게 된 친구․동료들끼리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를 주고 받곤 한다.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는 것은 ‘앞으로 연락하고 지내자’ 정도의 의미지만, 미니홈피 주소를 주고 받는 것은 '좀더 친하게 지내자'라는 의미로 읽힌다. 자신에 대한 정보와 근황이 담긴 좀더 사적인 공간을 오픈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좀더 알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오프라인보다 편하게, 좀더 자주 만날 수 있다.
미니홈피는 일차적으로 ‘일촌’ 관계로 엮여있다. 서로 동의 하에 일촌 관계를 맺고 나면, 좀더 사적인 내용은 선택적으로 일촌에게만 공개할 수 있다. ‘일촌’의 실제 의미가 부모․자식 간의 촌수를 뜻하듯이, 싸이월드에서 “일촌맺자”는 말은 그만큼 긴밀한 관계를 맺자는 다정한 뜻이다.
‘도토리’는 싸이월드 내에 쓰이는 일종의 ‘돈’이다. 싸이월드의 가입자들은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여러 가지 아기자기한 아이템과 배경 음악, 일촌에게 줄 선물 등을 도토리로 살 수 있다.
사람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일정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것처럼 싸이월드의 도토리 역시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주인의 개성을 드러내고 방문자들이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미니홈피를 꾸미고 관리하기 위한 아이템을 도토리로 살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벤트를 걸어 특정 숫자에 방문하는 사람이나 생일을 맞은 일촌에게 아이템을 선물함으로써 친절을 베풀 수도 있다.
선물을 자주 하는 사용자의 경우 자신의 미니홈 오른쪽 상단에 있는 ‘카인드(kind)' 수치가 높아진다. 방문객이 많은 미니홈피에는 '페이머스(famous)' 수치가 늘어난다.
오프라인에서 친절하고 인기있는 사람에 대한 선호도가 높듯이, 싸이월드에서의 인간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볼 것이 많은 사람의 미니홈피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득시글하다. 아무래도 오프라인에서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보다는 사이버 상이 적게 드는 편인 까닭에 인맥 관리에 싸이월드를 이용한다는 경우도 많다. 세일즈맨이나 보험 관리사들은 고객 관리에 싸이월드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사이좋은 사람들의 ‘싸이월드’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는 싸이월드에서는 또 한가지 재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바로 ‘사람 찾기’다. 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난 해만 알면, 그 사람이 싸이월드 가입자일 경우 찾고 싶은 사람의 미니홈피로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찾고 싶은 사람이 싸이월드에 가입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10대에서 30대 초반 연령대의 사람이라면 천 만명 가입자 가운데 없을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 또한 흔한 이름인 경우에는 후보자가 많아 여러번 클릭을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찾고 싶다는 의지만 강하다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연예인 역시 ‘사람찾기’를 통해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기획사 차원에서 관리하는 공식 홈페이지 보다 스타의 손길이 좀더 섬세하게 묻어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찾는 팬들이 많다. 특히, 전문가들의 솜씨에 의한 정제된 사진으로 채워져 있는 공식 홈페이지와는 달리, 연예인의 미니홈피에는 핸드폰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로 손수 찍은 생생한 사진들이 많아 좋아하는 스타의 삶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또한 미니홈피 초기 화면의 일촌평이나 게시물 등을 통해 연예인들의 인맥 관계를 짐작할 수 있으며 링크를 타고 다른 연예인의 홈을 방문할 수도 있다. 일부 마음 좋은 연예인들은 ‘일촌맺기’를 신청하는 팬들에게 일촌을 허락하기도 한다.
한류스타 류시원의 경우,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머물러 있는 동안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꾸준히 근황을 알림으로써 국내 팬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활발한 일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요즘 일본 팬들의 미니 홈피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5.05.31 00:12, 한 일본 팬이 류시원의 미니 홈을 방문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Dear Ryu Siwon sii
♪ 오늘의 도쿄는 추웠지요····피로합니까?건강합니까?
기온의 차이가 크니까···· 감기 걸리지 말아 주세요!
5월이나 내일에 끝나는군요···
세월이 지나는 것이 빠릅니다···
매일 행복하게 보내 주세요
★ 오빠~~★ 사랑하고 있어요 ★*^0^*★      
From TOMOE☆(트모에)(^o^)丿”

사이버 세상에도 분명 온기가 존재한다. 일촌들 간의 촘촘한 네트워크로 이뤄져있는 싸이월드의 공간은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할 것이다. 실명제 기반의 인맥 중심으로 운영되는 싸이월드가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나 블로그에 비해 다소 폐쇄적인 인터넷 문화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싸이월드의 일촌 문화가 국경을 넘어 일본을 비롯한 세계에 좀더 알려져 ‘국제 일촌’도 좀 생겨줬으면 한다. 왜 안 되겠는가. 서로 동의만 하면 얼마든지 일촌이 될 수 있는 곳이 싸이월드인데 말이다.

<tip>
연예인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
김희선 : http://www.cyworld.com/kimheeseon
류시원 http://www.cyworld.com/jolla106
http://www.cyworld.com/rain3rd
채연 : http://www.cyworld.com/fuhachaeyeon
보아 : http://cyworld.nate.com/BoA42
세븐 : http://cyworld.nate.com/yg7
슈(SES) : http://www.cyworld.com/sh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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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창간하는 <한일문화포커스>에 객원으로 쓴 기사.
시의성이 무지 떨어지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행되는 문화 전문 잡지이고 일본 부수 쪽이 좀더 높다.
매우 날림이다. 하지만 모처럼 부담없이 즐겁게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