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면 한국이 보인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40분쯤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하천을 따라 깔아놓은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간다. 왕복 자전거도로 옆에는 연두색으로 칠해진 인도가 나 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자전거 도로 한복판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본다. 그것도 두세명씩 옆으로 나란히 서서 도로를 3분의 2를 점령하고 걸어간다. 한참 전부터 종을 한두번 울리면 굼뜬 아줌마, 아저씨들이 슬그머니 인도로 비켜 줄 때도 있지만 ‘니가 비켜 가시오.’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뒤에서 종을 울릴 땐 그렇다치고 한참 앞에서도 자전거가 달려오고 있는 걸 보면서도 세명씩 나란히 걸어오는 사람들이 비켜줄 생각을 안 해서 종을 울려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비켜주는 기미가 없으면 그 사람들을 지나칠 때까지 연이어 종을 울리며 지나간다. 때론, ‘종이 울리면 좀 피해 줍시다.’ 이러고 지나갈 때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 아줌마, 아저씨들 반응은 정말 가관이다. 최근 몇가지 반응들을 보면,

“(뒤에서)어떤 년인데 저래?”(3명이 나란히 걸었던 아줌마 부대)
“얌마, 니가 비켜가면 되잖아.”(부부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가 연신 울려대는 종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 도로 한복판에서 걷고 있다가 그 중 아저씨가 던진 말)

그리고 어제 저녁, 인도가 끝나고 자전거 도로만 표시되어 있음에도 싹 무시하고 도보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 달리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종을 울려댔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 사람들 옆을 지나가며 “종이 울리면 좀 피해주던가, 자전거 도로니까 한줄로 다닙시다.” 이랬더니 아저씨왈 “야, 여기가 사람 다니는 데야? 자전거 다니는 데야?” 이러질 않겠는가. 바닥에 그려진 자전거 마크는 뭐냐고 했더니 이 아저씨 왈 “이런 쌍놈의 계집애!” 또 이러는 게 아닌가! 이쯤 되면 나도 예의 어쩌고가 필요가 없는 거다. 문제는 그 아저씨 여차하면 한 대 내려칠 것도 같았다는 사실. 내가 맞을 일 있나? 좋다, 나도 독한 맘 먹고 “쌍놈의 아저씨!”라고 날려주고 발판을 밟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런 쌍스런 욕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자전거를 탄 이래 그리고 어제 따라 한 20여분 달리는 동안 그런 일을 수도없이 당하다 보니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그렇게 힘들게 누리는 데 서러움이 들어서였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시간에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게 잘못인가, 이러다 내 명에 못살고 죽는 거 아닌가, 이제 자전거를 그만 타야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요즘 난 자전거 타고 전국 일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어제도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그만 타야하나 그런 회의까지 들 정도면 너무 변덕이 심한 건가?

웃긴 건 종종 저만치 앞에서 눈에 띄는 외국인들은 자전거가 지나가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몸을 잽싸게 움직여 자전거 도로 밖으로 피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대조현상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그런 대조적인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가 숙제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내머리에서 바보 도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강과 녹색으로 자전거 도로와 인도를 구분해 놓은 곳에서 어떤 부부가 자전거로 자전거 도로인 붉은색 길을 옆으로 가로막고 서 있어서 종을 울렸는데도 뻔히 쳐다보기만 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 거다. 옆에 서 있는 아들로 보이는 녀석이라도 옆으로 비켜서면 피해가겠는데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 애한테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보였다. 종을 계속 울리며 다가가 그 아이가 비켜서는 걸 기다리며 종이 울리는데 피해줄 생각 좀 해야되는 거 아니냐고 한마디 하고 발판을 밟는데 머리에서 번개가 지나갔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남이 나를 위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수동적 자세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거였다. 주체적 / 능동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응적 / 수동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부싸움을 해도 남편/아내인 당신이 문제요, 사회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있을테니까 니가 좀 바뀌시오다.

아내는 남편한테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한테 의존하고, 남편과 아내가 소통되는 삶이 아니다 보니 아내는 그 애정결핍을 자식한테서 보상받으려는듯 자식한테 과도한 관심을 쏟아붓고, 자식은 엄마의 명령에 길들여진 삶이다 보니 다들 얽히고 설켜 자기 몸이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거다. 직장이고, 집이고 명령, 통제, 지배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스스로 움직일 줄을 모르는 거다. 그러니 자전거 도로에서도 주체적 의식이 안 따라 주니 몸을 움직일 필요를 못 느끼는 거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한국이 바뀌기 꽤 힘들겠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전거 도로에만 있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이 사회 곳곳을 그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이 사회가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공교롭게도 어제 도서관에서 홍은택 씨가 쓴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라는 책을 봤는데 거기에서 러시아가 망한 이유가 윗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국토 횡단을 해보지 않아서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회 운동을 한다는 분들도 자전거를 타보면 생각이 확 바뀌지 않을까? 그 책에서는 역사 현장에 의미를 둔 것 같지만, 난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한고집 / wassgoinon
출처 : 한토마 게시판 http://bbs2.hani.co.kr/board/ns_society/Contents.asp?Stable=NSP_005000000&Idx=29197&Rno=24401&rp=


타성에 젖는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