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물 ㅡ안도현

고여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는 절대 아니다.

잘 산다하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이는 일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있어도 어느틈엔가 새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도 잴 수 없기 때문이다.


***

어째서 바람직한 글, 바람직한 정서에는 종종 거부감이 생겨버리는지
다른 사람들처럼 왜 안도현 시가 좋아지지 않는지.
잘 변명할 수 없지만 한 마디하고 도망가자면
모자라고 게으르고 이기적인 내가 줄곧 들어왔던
옳은말(이른바 잔소리;;)들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안다. 또한 유려하고 매끄러운 언어로 쓰여진 싯구가 아니어도, 시인의 위대한 정신만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음도 안다. 안다. 알기만 한다. 좋아지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