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불>, 레이몬드 카버
- 본인의 취향
- 2003. 2. 14. 13:49
1960년대 중반, 나는 아이오와 시티의 한 복잡한 코인 란드리(coin laundry)에서 다섯 통인가 여섯 통의 빨래를 세탁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이들의 옷이었지만, 물론 나와 아내의 옷도 섞여 있었다.
그 토요일 오후 아내는 대학체육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내 책임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일 파틴가 하는 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있었다. 그 틈에 나는 빨래를 하러 나온 것이다.
나는 이미 코인 란드리 사용을 둘러싸고 한 심술궂은 노파와 한바탕 입씨름을 벌인 뒤, 그 노파 혹은 그녀와 비슷한 다른 누군가와 함께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가게 안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건조기를 연신 초조하게 곁눈질했다.
건조기 가운데 하나가 작동을 멈추면 나는 젖은 빨래감이 잔뜩 담긴 쇼핑용 바구니를 들고 잽싸게 그 쪽으로 뛰어갈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미 30분 이상 빨래통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며 세탁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바람에 두 번이나 기회를 무산시킨 전례도 있었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딘가에 가 있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녁 무렵이 다가올수록 점점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령 옷들을 건조기에 집어넣는다 해도 빨래들을 다 말려서 기혼 학생 기숙사 안에 있는 집까지 가지고 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이 걸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건조기 하나가 멈춰 섰다. 마침 나는 바로 그 앞에 서 있었다.
건조기 안에 들어 있던 옷들이 서서히 회전수를 줄이더니 잠잠해졌다. 나는 30초 안에 그 빨래의 주인이 나서지 않으면, 그것들을 꺼내놓고 내 빨래를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것이 코인 란드리의 불문율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건조기 뚜껑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그 코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기계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빨래 몇 개를 꺼내 보았다. 그리고는 그것들이 아직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 도로 뚜껑을 닫더니 동전 두 개를 기계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하는 수 없이 다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그 엄청난 좌절감의 와중에서, 이 지구상 그 어디에도 내가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로 내게 다가올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내가 언제까지나 그 아이들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언제까지나 영원히 면제받지 못할 책임과 항구적인 걱정거리에 붙박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지금 진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달과 밀물 썰물의 관계, 그것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날카로운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인생에 있어 내가 희망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코인 란드리에서, 나는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 인생이 대부분 잔돈 나부랭이 같은 것, 그리 많은 빛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혼란의 도가니와도 같은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내가 존경해 마지않은 작가들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작가들은 토요일 오후를 코인 란드리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자식 뒷바라지에 바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세상에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거나 시력을 상실하는, 때로는 고문이나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는 등 훨씬 더 심각하게 작업을 방해하는 요인에 직면했던 작가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 마음이 위로받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ㅡ 이 모든 일이 세탁 편의점 안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ㅡ 나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어떤 종류의 책임과 당혹감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약간의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정말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것을 참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적응 혹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는 시각을 낮춰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나중에야 나에게 통찰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언가? 통찰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올바르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면 올바른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해왔다.
열심히 노력하고 하나하나 인생을 쌓아가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다. 힘든 노동, 목적, 선한 의도, 충성, 우리는 이런 것들이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을 덕목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런 꿈을 꾸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힘든 노동과 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오와 시티 어디에선가, 혹은 그 직후인 새크라멘토 어디에선가 우리 꿈들은 파열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신성한 것이라고, 경배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모든 정신적 가치들이 바스라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에게 무언가 대단히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가족들 사이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무언가였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침식(侵蝕)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우리가 보고 있지 않는 동안에 아이들이 운전석에 앉아버렸다.
지금에야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고삐와 함께 채찍까지 한 손에 움켜쥐었던 것이다. 우리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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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도 훌륭하지만, 나는 이 소박하고 예리한 작가의 에세이가 참 마음에 든다. '마침표 하나까지 제자리에 정직하게' 쓰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평범한 문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글은 이렇게 써야하는 것이다.
두 줄이 안 넘어가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는 그야말로 담백하고 강요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해낸다. 또한 카버의 소설은,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상황에서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두근-하고 가슴에 와닿는 위대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그는 최고의 작가다.
그 토요일 오후 아내는 대학체육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내 책임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일 파틴가 하는 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있었다. 그 틈에 나는 빨래를 하러 나온 것이다.
나는 이미 코인 란드리 사용을 둘러싸고 한 심술궂은 노파와 한바탕 입씨름을 벌인 뒤, 그 노파 혹은 그녀와 비슷한 다른 누군가와 함께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가게 안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건조기를 연신 초조하게 곁눈질했다.
건조기 가운데 하나가 작동을 멈추면 나는 젖은 빨래감이 잔뜩 담긴 쇼핑용 바구니를 들고 잽싸게 그 쪽으로 뛰어갈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미 30분 이상 빨래통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며 세탁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바람에 두 번이나 기회를 무산시킨 전례도 있었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딘가에 가 있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녁 무렵이 다가올수록 점점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령 옷들을 건조기에 집어넣는다 해도 빨래들을 다 말려서 기혼 학생 기숙사 안에 있는 집까지 가지고 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이 걸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건조기 하나가 멈춰 섰다. 마침 나는 바로 그 앞에 서 있었다.
건조기 안에 들어 있던 옷들이 서서히 회전수를 줄이더니 잠잠해졌다. 나는 30초 안에 그 빨래의 주인이 나서지 않으면, 그것들을 꺼내놓고 내 빨래를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것이 코인 란드리의 불문율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건조기 뚜껑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그 코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기계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빨래 몇 개를 꺼내 보았다. 그리고는 그것들이 아직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 도로 뚜껑을 닫더니 동전 두 개를 기계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하는 수 없이 다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그 엄청난 좌절감의 와중에서, 이 지구상 그 어디에도 내가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로 내게 다가올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내가 언제까지나 그 아이들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언제까지나 영원히 면제받지 못할 책임과 항구적인 걱정거리에 붙박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지금 진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달과 밀물 썰물의 관계, 그것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날카로운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인생에 있어 내가 희망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코인 란드리에서, 나는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 인생이 대부분 잔돈 나부랭이 같은 것, 그리 많은 빛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혼란의 도가니와도 같은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내가 존경해 마지않은 작가들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작가들은 토요일 오후를 코인 란드리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자식 뒷바라지에 바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세상에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거나 시력을 상실하는, 때로는 고문이나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는 등 훨씬 더 심각하게 작업을 방해하는 요인에 직면했던 작가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 마음이 위로받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ㅡ 이 모든 일이 세탁 편의점 안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ㅡ 나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어떤 종류의 책임과 당혹감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약간의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정말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것을 참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적응 혹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는 시각을 낮춰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나중에야 나에게 통찰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언가? 통찰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고 올바르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면 올바른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해왔다.
열심히 노력하고 하나하나 인생을 쌓아가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다. 힘든 노동, 목적, 선한 의도, 충성, 우리는 이런 것들이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을 덕목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런 꿈을 꾸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힘든 노동과 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오와 시티 어디에선가, 혹은 그 직후인 새크라멘토 어디에선가 우리 꿈들은 파열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신성한 것이라고, 경배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모든 정신적 가치들이 바스라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에게 무언가 대단히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가족들 사이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무언가였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침식(侵蝕)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우리가 보고 있지 않는 동안에 아이들이 운전석에 앉아버렸다.
지금에야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고삐와 함께 채찍까지 한 손에 움켜쥐었던 것이다. 우리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에세이 <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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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도 훌륭하지만, 나는 이 소박하고 예리한 작가의 에세이가 참 마음에 든다. '마침표 하나까지 제자리에 정직하게' 쓰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평범한 문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글은 이렇게 써야하는 것이다.
두 줄이 안 넘어가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는 그야말로 담백하고 강요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해낸다. 또한 카버의 소설은,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상황에서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두근-하고 가슴에 와닿는 위대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그는 최고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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