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

(...)그러나 바라던 인간상과는 정반대인 자신을, 하나하나, 꼼꼼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보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은 견딜 수 없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너는 소설을 쓰더니 여자같아졌구나. 훨씬 남자답고, 거칠고, 뭐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나쁜 짓만 하고 다녔는데 말이다"라고.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든다. 반성이란 별볼일 없는 짓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필요 이상 자신을 지나치게 응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 무렵 나한테는 껍질을 쓰지 않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무뢰(無賴)한 정신이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한마디로 말해 잘난 척하고 있다. 잘난 척하는데다가, 그런 자식을 의식하며 믿으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이불 안에서 기개 없이 떨고 있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밤의 빛' 中에서





스물다섯에 오직 소설을 위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산골짝 집 한채에 은거하여 원하는 글만 써내는 희유의 소설가.
소설 한권을 시작할 때마다
그간 번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생활비를 계산하고,
마누라와 둘이 살면서 자식농사는 소설을 위한 생활에 방해가 된다며 계획조차 없고,
권력과 권위에 물든 문단과는 아예 상종을 안 하고,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시부터 12시까지 칼 같이 집필하고
나머지 시간은 애견과 산골을 뛰어다니며 머리를 식힌다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약 350p 분량의 책을 내내 신기하다는 기분으로 읽었다.
고집불통 외골수에 빳빳한 성격. 게다가 여성폄하사상까지
이 영감 아쟈씨가 맘에 들었다는 건 아니다.
허나 흥미롭게 끝까지 읽었던 것은
내 기호를 초월하는 꿈틀거림과 힘을 느꼈기 때문이고, 경도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에게 한없이 약한 면이 있다.

게다가 꽤 오래 이 산문집을 들고 다닌 덕에, 문체까지 점점 닮아가고 있다.
일본어도 모르는 주제에 번역체나 흡수하고 있다니 한심하지만,
그의 그 메마르고 딱딱한 문체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풍부함을
갖고 싶다고 미치도록 갖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으니,
당분간은 실험을 좀 해보려고 한다.
진공상태같은 글인데, 어째서 전하는 바가 그토록 또렷이 떠올라있는지
또한 평소에 흠모해 마지 않는 옮긴이 김난주씨의 톡 쏘는 냄새가 유독
그를 옮긴 글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이게 왠일인지도 좀 알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