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피린 두 알만 먹으면 잊을 수 있다
- 본인의 취향
- 2003. 10. 8. 23:31
처음에 나는 당신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고 당신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 이름은 한나 K. 집은 주택단지 26블럭에 있다. 72번지다.
봄날 저녁이었다. 비가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은 많이 흘렀다.
당신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흰 벚나무들이 서 있었다.
당신의 집은 27블럭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검은 자동차 보닛 위에 젖은 벚꽃의 흰 비가 내렸다.
내가 당신을 만나기 시작하자 내 친구들은 모두 그만두라고 말했다.
당신의 친구들도 만일 알았다면 ,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고 당신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래서 세번째 만나는 날 당신은 나에게 말했다. 한나, 우리는 너무 많이 만났으니 이제 헤어지자.
나는 좋다고 했다. 주전자에서 차가 끓었다. 뜨거운 차에 밀크를 타면서나는 다시 한번 더 말했다.
그래요. 좋아요. 이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어요.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되지 뭐. 괜찮을 거야.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당신의 집을 떠나 벚나무의 거리를 걸어오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아, 안돼. 그건 안돼. 절대로 안돼. 시작하면 안돼.
아무리 밤의 벚꽃이 아름다워도 안돼. 곧 사라지고 말거야.
모두들 그만두라고 말했다.
나, 당신을 좋아하나봐. 헤어질 수 없어요.
그런 감정은 이제 곧 사라진다. 아스피린을 두 알 먹고 푹 자면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밤의 벚꽃 거리를 달려 당신의 집 창가에 선다. 밤의 벚꽃 거리를 달려 당신의 집 창가에 선다.
주먹을 쥐고 창문을 두드린다.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다.
페이브먼트에 내리는 빗물소리와 집 안의 텔레비전 축구 중계와 가스대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소리 때문인가? 아프게 두드린다.
마침내 당신이 나와 창문을 연다. 왜? 왜? 왜? 한나, 우리는 이제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말을 잘 들어야지, 그렇지?
미안해요, 난 젖었어요.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될까요?
당신은 타월을 가져다주고 차를 끓여주고 친절하다. 그리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 앉으면서 말한다.
일본과의 축구 결승전인데 난 이 경기를 놓칠 수 없어.
나, 당신을 좋아하나봐.
이봐, 한국이 형편없이 지고 있어. 뛰는 게 아니라 차라리 절름거리고 있군.
헤어질 수 없어요.
우리는 겨우 1백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을 뿐이야. 그런데 어떻게 계속할수가 있나?
불편하면 내가 멀리 떠나겠어요. 하지만 당신을 잊지는 못하겠어요.
한나, 넌 아직 어리다. 그런 감정은 이제 곧 사라진다. 아스피린을 두 알먹고 푹 자고나면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넌 곧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될 거고 그 사람이 운명이라고 생각할 거야.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어떤 일이 정말로 끝날 때 눈물은 나오지 않고 어두운 밤의 박쥐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혹시 내가 자살하지 않았나 걱정이 되서 그 이후 당신은 나에게 한 번 전화했다.
하이, 잘 지내고 있겠지? 하고 물었다.
물론 잘 지내고 있어요. 축구는 어떻게 되었나요?
연패했어. 우울하군. 기분 전환이 필요해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중이지.
넌 어떤가.
음. 새 블라우스와 화분을 샀어요.
Good. 즐겁게 지내도록. 새 남자친구도 만나도록 해.
그럴 생각이죠.
고양이 먹이를 사 가지고 오면서 길을 건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나에게 마지막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람은 짐승의 모습이 남아 있기에 본능이 가르쳐 주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어떤 일이 시작될 때 섬광이 없으며 어떤 일이 정말로 끝날 때 눈물은 나오지 않고 어두운 밤의 박쥐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당신은 현존 하지 않고 동굴의 환영으로만 있다.
그래서 격렬한 고통도 없이 나는 오래오래 아프다...
-아스피린 두 알만 먹으면 잊을 수 있다, 배수아, <철수> 中에서
++
각성엔 커피, 영양보충엔 우유. 피로엔 신맛 과일, 두통엔 타이레놀.
-그간 경험으로 만들어진 꽤 쓸만한 자구치료제 리스트다.
그리고 배수아을 읽고 발견한 아스피린. 아스피린 두 알.
(아무리 만병통치 진통해열제라지만 아픈 마음까지?)
아니, 믿기 시작하면 효능도 올 것이다.
인간의 몸이란, 그리고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잊는다해서 행복해질런지는. 그건 잘 모르겠다.
(아픈 일이든 힘든 일이든, 뭔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다. 젠장.)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 이름은 한나 K. 집은 주택단지 26블럭에 있다. 72번지다.
봄날 저녁이었다. 비가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은 많이 흘렀다.
당신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흰 벚나무들이 서 있었다.
당신의 집은 27블럭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검은 자동차 보닛 위에 젖은 벚꽃의 흰 비가 내렸다.
내가 당신을 만나기 시작하자 내 친구들은 모두 그만두라고 말했다.
당신의 친구들도 만일 알았다면 ,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고 당신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래서 세번째 만나는 날 당신은 나에게 말했다. 한나, 우리는 너무 많이 만났으니 이제 헤어지자.
나는 좋다고 했다. 주전자에서 차가 끓었다. 뜨거운 차에 밀크를 타면서나는 다시 한번 더 말했다.
그래요. 좋아요. 이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어요.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되지 뭐. 괜찮을 거야.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당신의 집을 떠나 벚나무의 거리를 걸어오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아, 안돼. 그건 안돼. 절대로 안돼. 시작하면 안돼.
아무리 밤의 벚꽃이 아름다워도 안돼. 곧 사라지고 말거야.
모두들 그만두라고 말했다.
나, 당신을 좋아하나봐. 헤어질 수 없어요.
그런 감정은 이제 곧 사라진다. 아스피린을 두 알 먹고 푹 자면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밤의 벚꽃 거리를 달려 당신의 집 창가에 선다. 밤의 벚꽃 거리를 달려 당신의 집 창가에 선다.
주먹을 쥐고 창문을 두드린다.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다.
페이브먼트에 내리는 빗물소리와 집 안의 텔레비전 축구 중계와 가스대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소리 때문인가? 아프게 두드린다.
마침내 당신이 나와 창문을 연다. 왜? 왜? 왜? 한나, 우리는 이제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말을 잘 들어야지, 그렇지?
미안해요, 난 젖었어요.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될까요?
당신은 타월을 가져다주고 차를 끓여주고 친절하다. 그리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 앉으면서 말한다.
일본과의 축구 결승전인데 난 이 경기를 놓칠 수 없어.
나, 당신을 좋아하나봐.
이봐, 한국이 형편없이 지고 있어. 뛰는 게 아니라 차라리 절름거리고 있군.
헤어질 수 없어요.
우리는 겨우 1백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을 뿐이야. 그런데 어떻게 계속할수가 있나?
불편하면 내가 멀리 떠나겠어요. 하지만 당신을 잊지는 못하겠어요.
한나, 넌 아직 어리다. 그런 감정은 이제 곧 사라진다. 아스피린을 두 알먹고 푹 자고나면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넌 곧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될 거고 그 사람이 운명이라고 생각할 거야.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어떤 일이 정말로 끝날 때 눈물은 나오지 않고 어두운 밤의 박쥐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혹시 내가 자살하지 않았나 걱정이 되서 그 이후 당신은 나에게 한 번 전화했다.
하이, 잘 지내고 있겠지? 하고 물었다.
물론 잘 지내고 있어요. 축구는 어떻게 되었나요?
연패했어. 우울하군. 기분 전환이 필요해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중이지.
넌 어떤가.
음. 새 블라우스와 화분을 샀어요.
Good. 즐겁게 지내도록. 새 남자친구도 만나도록 해.
그럴 생각이죠.
고양이 먹이를 사 가지고 오면서 길을 건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나에게 마지막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람은 짐승의 모습이 남아 있기에 본능이 가르쳐 주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어떤 일이 시작될 때 섬광이 없으며 어떤 일이 정말로 끝날 때 눈물은 나오지 않고 어두운 밤의 박쥐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당신은 현존 하지 않고 동굴의 환영으로만 있다.
그래서 격렬한 고통도 없이 나는 오래오래 아프다...
-아스피린 두 알만 먹으면 잊을 수 있다, 배수아, <철수> 中에서
++
각성엔 커피, 영양보충엔 우유. 피로엔 신맛 과일, 두통엔 타이레놀.
-그간 경험으로 만들어진 꽤 쓸만한 자구치료제 리스트다.
그리고 배수아을 읽고 발견한 아스피린. 아스피린 두 알.
(아무리 만병통치 진통해열제라지만 아픈 마음까지?)
아니, 믿기 시작하면 효능도 올 것이다.
인간의 몸이란, 그리고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잊는다해서 행복해질런지는. 그건 잘 모르겠다.
(아픈 일이든 힘든 일이든, 뭔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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