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ptember Haruki
- 본인의 취향
- 2003. 9. 2. 23:24
누구나 다 한때는 냉담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마음 속의 생각을 절반만 입 밖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몇 년 동안 그걸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생각의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냉담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1년 내내 서리제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식 냉장고를 쿨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도 그렇다.
버스를 거꾸로 타고, 잘못된 길에 들고, 우회전했어야 할 사거리을 지나쳐버리고. -길을 걷다가 곧잘 정신이 나가버리는 것은 부적절한 순간에 갑자기 '이런 따위' 문장이 머리 속에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주의!
비가 미친 듯이 오는, 게다가 20분쯤 지각이 예상되는 출근길에서는 정신을 '사무실 무사 도착'에만 집중할 것. 이유는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평소 스피드 이상을 내야하기 때문.
그러나 사정이 이러하다고 해서, 희박한 '의식'이 박약한 '의지'를 따라줄 리가 있나.
9월 들어 날씨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침에 내린 비는 정말이지 차가웠다. 나는 으슬으슬 어깨를 떨면서 물웅덩이를 피해 껑충껑충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8월 마지막 주에 읽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 핀볼'의 문장들이 생각나서 웅덩이 피하는 일을 관뒀다.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썩어가는 거 같아.
-썩어가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 선택의 수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 기껏해야 ...두 세가지 정도.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짜피 썩는 거 아니냐구.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지. 어떤 진보도 어떤 변화도 결국은 붕괴의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 그래서 나는 신바람이 나서 無를 향하려는 인간들에게 한 조각의 애정도 호의도 가질 수가 없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의 글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틀렸다.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 멀리하게 된다. 이유를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어줍지 않은 내 수준을 높여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기성복같은 일상과 학습, 매스컴만 해도 충분한 데, 남들 다 읽는 책까지 읽으면 머리 속 구석구석까지 똑같아질까봐 두려워서다. 누구나 알고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는 재미가 없다. 설사 달라봤자 거기에서 거기라고 하더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멀리하려 했으되 좋아하는 작가가 하루키라는 것이다. 내 멋대로 만든 범주로 하루키는 '이상-박일문 계보'에 든다. 문체는 시니컬하고 냉냉하고 경쾌하다. 태도는 담담하고 비타협적이고 자조적이며 가볍다. 그러나 (많은 훌륭한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정반대로도 읽힌다. 이들 소설은 예민하고 뜨겁고 아프고 쓸쓸하고 흔들거리고 자의식 과잉이고 어둡고 무겁다.
한편으로, '소설의 미덕을 차용하고 있는 수필'이라고 나는 내 맘대로 생각한다.
스물 여덟 가을을 잊어먹고 있던 하루키로 시작하는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일이지만,
걱정도 되지만,
어찌되었건 하루키식 농담이란 참 유쾌하니, 그것으로 됐다.
-많은 것이 완전히 변해 버렸어. 당신이 있던 오락실 자리에는 심야 영업을 하는 도넛 가게가 생겼구, 그 곳은 굉장히 맛없는 커피를 내놓지.
-그렇게 맛이 없어요?
-동물 영화에서 죽어가던 얼룩말이 꼭 그런 색깔의 흙탕물을 마시고 있었다구!
푸핫.
그것이 냉담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1년 내내 서리제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식 냉장고를 쿨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도 그렇다.
버스를 거꾸로 타고, 잘못된 길에 들고, 우회전했어야 할 사거리을 지나쳐버리고. -길을 걷다가 곧잘 정신이 나가버리는 것은 부적절한 순간에 갑자기 '이런 따위' 문장이 머리 속에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주의!
비가 미친 듯이 오는, 게다가 20분쯤 지각이 예상되는 출근길에서는 정신을 '사무실 무사 도착'에만 집중할 것. 이유는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평소 스피드 이상을 내야하기 때문.
그러나 사정이 이러하다고 해서, 희박한 '의식'이 박약한 '의지'를 따라줄 리가 있나.
9월 들어 날씨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침에 내린 비는 정말이지 차가웠다. 나는 으슬으슬 어깨를 떨면서 물웅덩이를 피해 껑충껑충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8월 마지막 주에 읽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 핀볼'의 문장들이 생각나서 웅덩이 피하는 일을 관뒀다.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썩어가는 거 같아.
-썩어가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 선택의 수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 기껏해야 ...두 세가지 정도.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짜피 썩는 거 아니냐구.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지. 어떤 진보도 어떤 변화도 결국은 붕괴의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 그래서 나는 신바람이 나서 無를 향하려는 인간들에게 한 조각의 애정도 호의도 가질 수가 없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의 글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틀렸다.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 멀리하게 된다. 이유를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어줍지 않은 내 수준을 높여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기성복같은 일상과 학습, 매스컴만 해도 충분한 데, 남들 다 읽는 책까지 읽으면 머리 속 구석구석까지 똑같아질까봐 두려워서다. 누구나 알고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는 재미가 없다. 설사 달라봤자 거기에서 거기라고 하더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멀리하려 했으되 좋아하는 작가가 하루키라는 것이다. 내 멋대로 만든 범주로 하루키는 '이상-박일문 계보'에 든다. 문체는 시니컬하고 냉냉하고 경쾌하다. 태도는 담담하고 비타협적이고 자조적이며 가볍다. 그러나 (많은 훌륭한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정반대로도 읽힌다. 이들 소설은 예민하고 뜨겁고 아프고 쓸쓸하고 흔들거리고 자의식 과잉이고 어둡고 무겁다.
한편으로, '소설의 미덕을 차용하고 있는 수필'이라고 나는 내 맘대로 생각한다.
스물 여덟 가을을 잊어먹고 있던 하루키로 시작하는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일이지만,
걱정도 되지만,
어찌되었건 하루키식 농담이란 참 유쾌하니, 그것으로 됐다.
-많은 것이 완전히 변해 버렸어. 당신이 있던 오락실 자리에는 심야 영업을 하는 도넛 가게가 생겼구, 그 곳은 굉장히 맛없는 커피를 내놓지.
-그렇게 맛이 없어요?
-동물 영화에서 죽어가던 얼룩말이 꼭 그런 색깔의 흙탕물을 마시고 있었다구!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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